다양한 출처에서 온 메시지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나에게 기쁨을 드리는 예물
2025년 4월 1일 뉴브라운펠스 텍사스 주 미국에서 시스터 아마폴라에게 보내는 복되신 성모님과 하느님 아버지의 메시지 - 스페인어로 받아 적고 수녀가 영어로 번역함

(복되신 성모님)
내 자녀들아, 나의 작은 이들이여, 나의 군사들이여 –
잠시 침묵 속에서 나와 함께 하세요.
묵상과 경배의 침묵 속에서요.
(잠시 정지)
너희 영혼으로 무릎을 꿇고, 신성한 신비 앞에서 나에게 몸을 맡기세요. 생각도, 욕심도, 행동도 내려놓으세요. 믿음과 겸손함, 순종함을 통해 하느님의 생각, 의지, 행위로 옷 입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와서라, 자녀들아. 사랑의 침묵 속에서 나와 함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을 경배하세요. 나의 어린 양, 예수님께서 당신들의 뱃속에 신성한 작용으로 육화되셨습니다.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모든 피조물은 그분 앞에 몸을 낮춰야 합니다.
침묵하라, 자녀들아. 너희 하느님 앞에서, 너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고 사랑하시는 분 앞에서 말입니다.
(잠시 정지) 1

(하느님 아버지)
자녀들아, 2
그래, 침묵하라.
나는 너희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이해하는 너희 아버지다.
나의 신비 앞에서 너희의 침묵을 청한다.
겸손함이요, 믿음과 신뢰이며 사랑이다.
영혼이 그분의 위대함 앞에 자신의 작음을 깨닫고 경배하며 머리를 숙이는 침묵; 영혼이 아버지의 심장에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침묵이다.
나의 이름을 위해 싸우고 고통받은 영혼이 나의 사랑 속에서 쉬는 침묵이다.
자녀들아, 너희에게 이 침묵이 얼마나 필요한가. 때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필요하다. 전투를 계속하고 적의 점점 더 우레와 같은 소용돌이 가운데 나를 들을 수 있도록 필수적이다.
나의 침묵을 드리세요. 너희 생각과 추론은 내 왕좌 앞에 두어라. 그리고 나의 빛, 나의 생각이, 나의 행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오.
움직이지 못하면 칼이 무슨 소용인가? 위험해진다.
내가 원하는 것을 쓰지 않으면 펜은 무슨 소용인가?
자녀들아, 나의 도구가 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완전히 자신을 벗어 버리셨다 – 심지어 신이시면서도 - 내가 요구하는 것을 하고 말하고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을 본받으세요.
자녀들아, 너희는 서로에게 많은 질문과 의견과 토론을 하며 너무나 슬픔과 믿음 부족, 불쾌함, 주의 산만함을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왜 자녀들아, 내가 다시 말하는 이유이다 – 너희 모두에게 - 침묵하라. 3
나의 왕좌 주위로 모여라, 나의 심장 주위로 모여라. 너의 이성과 감정 그리고 자만심을 내 왕좌 발치에 무릎꿇어라.
그리고 나의 빛을 받으세요. 내가 주는 빛이요, 당신들의 마음을 비추기 위해 내 심장에서 나오는 빛이다.
(잠시 정지. 이 첫 번째 부분이 그분이 지금 말하려는 것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아, 지극히 거룩한 제단 희생이 위험에 처해 있다. 가장 큰 위험에 처해있다.
위험이 무엇인지 아는가? 가장 큰 공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성 모독도, 이교도도, 그 모든 것을 더럽히려는 시도도 아니다.
믿음 부족과 이성의 오염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녀들아, 너희 영혼 속에서 이 위대한 신비를 파괴하고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효과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껏 이해하지 못했던 극히 미묘한 공격이야. 아니면 부분적으로만 이해했을 수도 있지.
성미사는 무엇이니?
내 예수님의 가장 완벽한 희생, 그분께서 불멸의 육신을 취하시고 완전히 자신을 낮추시어 모든 일에 나에게 순종하셨으며 너희와 나를 위해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시면서 사탄의 증오와 조롱을 모두 받아들여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너희 구원을 위해 가장 맑고 귀중한 당신의 피로 대가를 치르시는 것이다.
이것은 신성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 내 사랑, 내 말씀, 내 가르침, 내 뜻을 주시기 위한 신비야.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지.
고통과 버려짐 속에서 죽어 다시 한번 내 아이들을 내 마음속에 모으시는 영원한 사랑이 육신으로 나타난 신비이다.
얘들아, 지금 너희 상태로는 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말은 없어.전부.
최고의 희생.
모든 가격을 초월하는 위대한 보석.
바쳐지는 모든 미사, 너희가 바치는 모든 미사는 이 희생과의 연합과 다름없다.
이것은 “만찬”이 아니야. “파티”도 아니고 “모임”도 아니다. 4
내 예수님의 희생이 현존하게 되어 너희 각자가 믿음과 진실 안에서 자신의 희배를 연합하고, 내 예수님과 함께 나에게 바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5 너희가 받는 것, 내가 요구하는 것을 정의롭게 받아들이는 너희의 순종, 사랑 말이다.
신성한 신비 속으로 잠시 들어가 내 예수님과 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것이 인간적인 행동 속에 담길 수 있을까?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얘들아, 그렇다면 성미사를 “파괴”할 수 있는 공격은 믿음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을 알겠니?
이것이 내가 믿음, 내 빛과 신비를 받고 너희 안에서 그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간단하고 겸손한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가장 거룩한 제대의 본질, 성미사의 본질은 내 예수님께서 하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순간에 드린 당신의 말씀과 행동 말이다.
이해하니?
몸짓, 의례, 관습을 넘어선 것.
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고 말씀하셨니?
이것이 본질이야. 보석.
의례는 이 보석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내 왕좌 앞에 제시하기 위해 놓인 여러 개의 반지와 같다. 6
보석은 영원하고 변치 않으며 파괴할 수 없다. 어떤 공격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다. 7
그러니 얘들아, 이런 보석 주위에 있는 이 반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봐라.
반지의 목적은 무엇이니? 그 보석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드러내고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반지는 귀중하고 튼튼한 재료로 만들어져야 한다 – 충격, 흠집, 먼지, 열기, 추위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보석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반지가 아니라 오히려 보석이다. 그 때문에 반지로서 유용해지는 것이다.
보석이 없는 반지는 단순한 금속 조각일 뿐이다.
얘들아, 경계해야 한다.
지나치게 몰두하여 반지에 정신을 빼앗기지 마라.보석.
시간이 흐르면서 반지에는 많은 수정과 추가가 이루어졌다 – 어떤 것은 선의로, 어떤 것은 무지로 인해, 또 다른 것들은 악의와 교만으로 인해서.
완전한 반지란 무엇인지 알고 싶으신가요?
완전한 반지는 마리아의 티 없는 성심, 하느님의 진주, 천국의 기쁨입니다.
그분께서 그러셨듯이, 헌물과 함께하셨고, 보석을 그분께서 그러셨듯이 지켜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사제 아들들아, 존경할 만한 성사를 드리려면 그분의 심장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 모든 아이들아, 나는 너희에게 본질을 보여준다, 내가 보는 방식, 적게 산만해지고 원수가 쉽게 조작하는 추론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본질을 보아라, 얘들아. 그것을 묵상하고 사랑하라. 그리고 오직 이 방법으로만 너희는 나의 예수님의 가장 거룩한 희생 제사를 바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의 희생은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들아, 땅에서 이 사랑의 위대한 신비, 자비, 그리고 정의를 완전히 감상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 신비와 하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보여준다 - 나의 심장으로 – 그리고 나 안에서 살도록.
각자로부터 무엇을 요구하는가? 성사를 바치기를 어떻게 원하는가?
나의 예수를 바라보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리아와 함께 모방하며, 너희의 심장을 그분들의 심장과 하나로 맺고, 나의 사랑에 자신들을 봉헌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슬픔과 고통을 바치고, 나의 예수님과 함께 사랑, 순종 그리고 보상의 희생 제물로서 자신들을 바친다.
이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헌물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를 외모 이상으로 보는 것처럼, 이 신비를 그렇게 보도록 원한다.
아이들아, 기억해라 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할 것이다.
값없이 귀한 보석을 담고 있는 불완전한 반지조차도 말이다.
그래, 얘들아, 어떤 반지는 다른 반지보다 더 좋은 상태이고, 더 나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얘들아, 이성으로 오염되었고 믿음 부족에 의해 더럽혀졌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보석을 보아라. 본질을 보아라. 혼란스러워하지 마라.
지금 이 시간 동안 내가 너희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은 완벽한 반지가 아니라 완벽한 믿음, 절대적인 신뢰, 두려움 없는 사랑이다. 나의 것이 당연히 속하는 것을 나에게 주어라: 숭배, 신뢰 그리고 자녀로서의 사랑을 말이다.
믿음, 겸손, 그리고 순종.
나머지는 얘들아, 내가 할 것이다.
나는 너희 안에서 그것을 성취하고, 너희를 통해, 너희의 협력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다.
평안하라.
지금 걸어가기 위해 나의 손에 이끌릴 수 있도록 필요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너희의 마음을 잠재워라.
내 아이들아,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라오너라.
너희의 생각, 인간적인 의지, 기준, 자만심 그리고 계획을 뒤로 하거라.
나의 예수님으로 옷 입어라.
너희 어머니와 여왕님의 망토를 덮으너라.
나의 예수님의 이름을 반복하라.
내 아들 토마스8가 인생의 마지막에 이해했던 것을 기억해라: 모든 인간 지식, 모든 이해, 모든 추론과 논쟁은 위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 짚 – 나의 진실.
괴로워하지 마라.
진리는 하나의 생각이 아니다. 내가 바로 진리다.
그리고 이 진리는 너희를 사랑한다 (미소)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을 준다.
내게 너의 사랑, 네 “모든 것”을 바치고 평화를 얻어라.
사랑한다, 얘들아.
경계하라. 내가 언제 올지 시간도 날짜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래서 너희에게 말한다: 경계하라.
내 축복과 미소를 너희에게 남긴다.
용기를 내라, 얘들아, 나의 군사들이여.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
나, 너희의 하느님은 각자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
너희를 사랑하는 아버지.
작은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몸을 굽히시는 너희의 하느님. +

(우리 복되신 어머니)
나의 어린 아이들아,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나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리고 나와 함께 아버지를 경배하라, 내 예수님과 신성한 사랑을 위하여, 그들의 작은 자녀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으로. 9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 성자 그리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영이시여,
저희는 당신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당신의 뜻과 소망을 받아들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소서.
당신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빛나는 믿음이 우리 안에 군림하게 하십시오.
주님, 저희의 하느님이시여, 천국과 땅에서 복되소서,
그리고 영원히. 아멘.
아멘, 얘들아.
카나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그가 하라는 대로 하여라."
아멘.
네 어머니는 너를 사랑하신다.
(미소)
참고: 각주는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수녀가 추가한 것이다. 때로는 독자가 특정 단어나 개념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또 다른 경우에는 하느님이시거나 성모님의 어조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각주를 달았다.)
아마폴라 수녀님 주석: 며칠 동안 거룩한 미사에 관한 계시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함께, 그분의 사랑의 위대한 신비에 대한 특별한 경배 행위를 하도록 부르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 - 이 두 번의 침묵은 경배로 가득 찬 순간이다. “침묵”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음", "공허함"을 상상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다른 침묵이다 – 그분의 모든 피조물에 의한 경배로 너무나 가득 찬 침묵이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경우 복되신 어머니의 하느님께 대한 경배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것들이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방식은 알 수 없지만, 오히려 영혼에 직접적으로 전달된다는 느낌이다.
2 - 이 단어는 마치 그분의 자녀 각자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부르는 것처럼 큰 권위로 말해졌다.
3 - 스페인어로 된 구절의 정확한 번역은 "침묵을 지키다"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물리적인 침묵 행위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모님이 이 메시지의 시작 부분에서 말씀하신 내면의 침묵 –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의지를 잠재우려는 행위라는 것을 이해한다.
4 - 이러한 단어들은 일부 사람들을 스캔들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미사는 확실히 천상의 영원한 만찬에 대한 참여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참조, 1323; 1382; 1391; 1402; 1408), 그리고 또한 그분의 자녀들이 모여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집회이기도 합니다 (CCC, 1097; 1346; 2179) – 확실히 서로와의 교류와 하느님과의 성체를 가져옵니다 (CCC, 1102; 1325; 1329) – 이러한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완성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없이는 천상, 진정한 하느님과의 성체를 참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본질, 기초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만찬의 근원, 교류의 근원을요. 그분은 우리가 이 기초가 우리의 영혼 속에 잘 확립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쌓아 올리실 수 있습니다. 인용 부호 안에 있는 말씀을 하셨을 때, 목소리의 톤이 채찍과 더 비슷해졌습니다. 마치 현재 자주 사용되어 미사의 희생적인 성격을 약화시키는 맥락에서 그들을 보고 계시는 것처럼요. 문제는 단어 자체나 진정한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변화시키고 거룩한 미사에 대한 믿음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고 조작된 방식입니다.
5 - 저는 이것이 예수님이 아버지를 경배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서, 그분의 도움으로, 그분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아버지를 경배한다는 의미라고 이해했습니다.
6 - 저는 다양한 반지가 거룩한 미사가 봉헌되는 모든 다른 의식을 가리킨다고 이해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 비잔틴, 마론파, 시로-말라바르, 암브로시아 등)
7 - 보석 자체는 파괴될 수 없지만, 우리 믿음이 보석에 파괴될 수는 있습니다.
8 - 토마스 아퀴나 성인.
9 - 이 글의 시작 부분에서처럼 복되신 성모님은 부드럽고 느리게, 너무 많은 경외심과 사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우리 마음을 그분과 함께 심오하면서도 매우 단순한 아버지를 향한 경배 행위로 끌어올리는 미풍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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